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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년 - 사산조 페르시아의 성립과 중동 지역의 변화

1. 사산조 페르시아의 탄생과 아르다시르 1세의 등장224년, 사산조 페르시아(Sassanid Empire)는 아르다시르 1세(Ardashir I)에 의해 창건되었다. 이는 기존의 파르티아(Parthian Empire, 혹은 아르사케스 왕조)의 몰락과 페르시아 지역에서 새로운 제국이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르다시르 1세는 파르티아 왕조의 마지막 군주였던 아르타바누스 4세(Artabanus IV)와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페르시아의 새로운 지배자로 등극했다. 그는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를 국교로 지정하여 정치적, 종교적 정통성을 확보하고 중앙집권적 통치를 강화하였다.사산조 페르시아는 파르티아 시대보다 더욱 중앙집권적인 국가 체제를 구축했다. 아르다시르 1세는 강력한 행정 체계를 정비하고,..

220년 - 중국 후한 멸망과 삼국 시대의 시작

1. 후한의 쇠퇴와 멸망의 배경후한(後漢, 25~220년)은 전한(前漢)의 멸망 이후 광무제(光武帝) 유수가 세운 왕조로, 200년 가까이 중국을 통치하였다. 그러나 2세기 후반부터 왕조의 기틀이 약화되면서 정치적 혼란과 내란이 심화되었다. 황제권이 약화되고 환관(宦官)과 외척(外戚)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정치 부패가 심화되었고, 지방 호족들의 세력이 강해지면서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해졌다.이러한 혼란 속에서 184년, 도교 사상을 기반으로 한 태평도(太平道)의 지도자 장각(張角)이 주도한 황건적의 난(黃巾賊之亂)이 발발했다. 이 반란은 진압되었지만, 이후 각지에서 군벌들이 성장하여 후한 정부의 통제력을 약화시켰다. 또한, 궁정 내부의 권력 다툼과 외척 및 환관들의 전횡이 지속되면서 후한은 더욱 쇠퇴해갔..

212년 - 카라칼라 칙령, 로마 제국 내 모든 자유민에게 시민권 부여

1. 카라칼라 칙령의 배경로마 제국은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가 제정(帝政)을 확립한 이후, 지속적으로 영토를 확장하며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포용했다. 그러나 로마 시민권은 오랫동안 제한된 특권으로 남아 있었으며, 특정 계층에게만 부여되었다. 기원후 212년, 로마 황제 카라칼라는 ‘안토니누스 칙령(Constitutio Antoniniana)’을 발표하여 제국 내 모든 자유민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였다. 이 칙령은 단순한 법적 변화가 아니라, 로마 사회의 근본적인 구조를 바꾸는 중요한 사건이었다.카라칼라 황제의 시민권 확대 결정은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로마 제국은 2세기 후반부터 내전과 국경 방어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세금 수입의 증가와 군대의 충원 필요성..

193년 - 5황제의 해, 로마 제국의 내전과 정치적 불안정

1. 5 황제의 해: 혼란의 서막193년은 로마 제국 역사에서 '5 황제의 해(Year of the Five Emperors)'로 알려진 격동의 시기였다. 이 해에는 페르티낙스, 디디우스 줄리아누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페스케니우스 니게르, 클로디우스 알비누스 등 총 다섯 명의 황제가 연이어 즉위하거나 황위를 주장하며 치열한 권력 다툼을 벌였다. 이러한 상황은 2세기말 로마 제국의 정치적 불안정과 내전으로 이어졌으며, 군대와 원로원의 충돌, 제국 내 각 지역의 반란이 겹쳐지면서 극도의 혼란이 발생했다.5 황제의 해는 단순한 권력 다툼이 아니라 로마 황제 선출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전까지 원로원의 승인을 받거나 황제가 후계자를 지정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면, 이제는 군대의 지지가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