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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년 - 5황제의 해, 로마 제국의 내전과 정치적 불안정

adventure-01 2025. 3. 18. 23:20

로마제국의 내전과 정치적 불안정

1. 5 황제의 해: 혼란의 서막

193년은 로마 제국 역사에서 '5 황제의 해(Year of the Five Emperors)'로 알려진 격동의 시기였다. 이 해에는 페르티낙스, 디디우스 줄리아누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페스케니우스 니게르, 클로디우스 알비누스 등

총 다섯 명의 황제가 연이어 즉위하거나 황위를 주장하며 치열한 권력 다툼을 벌였다.

이러한 상황은 2세기말 로마 제국의 정치적 불안정과 내전으로 이어졌으며, 군대와 원로원의 충돌,

제국 내 각 지역의 반란이 겹쳐지면서 극도의 혼란이 발생했다.

5 황제의 해는 단순한 권력 다툼이 아니라 로마 황제 선출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전까지 원로원의 승인을 받거나 황제가 후계자를 지정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면,

이제는 군대의 지지가 황제 즉위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이는 이후 로마 제국이 군사력 중심의 정치 구조로 변화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2. 페르티낙스와 디디우스 줄리아누스: 원로원과 군대의 충돌

192년 말, 전 황제 콤모두스가 암살된 후 원로원은 페르티낙스를 새로운 황제로 선출했다.

페르티낙스는 절제와 개혁을 강조하며 콤모두스의 방탕한 정책을 철폐하려 했지만, 근위대(프라이토리아니)의 반발을

샀다. 결국 즉위 후 불과 87일 만에 그는 근위대에 의해 암살당했다.

이후 근위대는 황제 자리를 경매에 부쳐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한 디디우스 줄리아누스를 황제로 옹립했다.

이는 로마 황제직이 더 이상 혈통이나 원로원의 승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군대와의 거래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줄리아누스의 즉위는 원로원과 군대 사이의 갈등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원로원은 줄리아누스를 공식적으로 인정했지만, 로마 시민들과 군대는 그의 통치를 정당하지 않다고 여겼다. 이러한 불만 속에서 제국 내 여러 장군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이는 곧 내전으로 확대되었다.

3. 내전의 시작: 세 명의 경쟁자

디디우스 줄리아누스의 즉위 소식이 전해지자, 제국 내 여러 장군들이 이에 반발하며 황제 자리를 주장했다.

그중 주요 인물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판노니아 군단 지휘관),

페스케니우스 니게르(시리아 총독), 클로디우스 알비누스(브리타니아 총독)였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로마로 진군하여 디디우스 줄리아누스를 처형하고

새로운 황제로 즉위했다. 그러나 니게르와 알비누스가 각각 동방과 서방에서 반란을 일으키면서

로마 제국은 본격적인 내전에 돌입했다. 세베루스는 194년 니게르를, 197년 알비누스를 차례로 제거하며

결국 단독 황제가 되었지만, 이 과정에서 로마 제국의 정치적 불안정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 시기의 내전은 단순한 황제 간의 권력 다툼을 넘어, 로마 제국 내 지역 간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동방과 서방에서 각각 다른 황제를 지지하는 세력이 형성되었고,

이는 이후 로마 제국의 분열 가능성을 더욱 높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군대가 황제 선출의 핵심 요소가 되면서

황제의 권력은 더욱 불안정해졌다.

4. 5황제의 해의 역사적 의미와 로마의 변화

5 황제의 해는 로마 제국이 점차 군사 독재 체제로 변화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 로마 황제직은 원로원의 승인보다 군사력에 의해 결정되는 구조로 변화했고,

황제는 군대의 충성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또한, 세베루스의 집권 이후 근위대 개편, 원로원의 권한 축소, 지방 총독의 군사력 강화 등이 이루어지면서 제국의 정치 구조가 더욱 중앙집권화되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군사적 개입이 잦아지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이후 3세기 군인 황제 시대(235~284년)로 이어지는 길을 열었다. 이후 황제들은 군대의 지지를 얻기 위해 무리한 원정을 감행하거나 군사적 보너스를 지급해야 했고,

이는 로마 경제의 악화를 초래했다. 또한, 황제의 권력이 불안정해지면서 암살과 내전이 빈번하게 발생하였고,

로마 제국의 쇠퇴를 가속화하는 요인이 되었다.

결국, 5 황제의 해는 로마 제국의 정치적 혼란을 극명하게 보여주며, 이후 로마가 점차 쇠퇴해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세베루스가 내전을 끝내고 제국을 재통합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의 통치 방식은 이후의 혼란을 더욱 부추기는 요소가 되었다. 특히, 군대 중심의 정치 체제가 확립되면서 황제의 권력은 더욱 불안정해졌고,

이는 결국 서로마 제국의 멸망으로 이어지는 장기적인 흐름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193년은 단순한 황제 교체의 해가 아니라, 로마 제국이 구조적으로 변화하는 중요한 시기로 평가된다. 이후 로마는 더욱 강력한 군사 독재 체제로 전환되었으며, 이는 제국의 안정성을 오히려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5 황제의 해는 로마 제국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으며, 이후 로마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사건으로 남아 있다.